
적이 아군이 되는 영화입니다. 북한 최정예 요원이 쿠데타로 부상당한 북한 1호를 남한 땅으로 데려오고, 남한 안보실장이 그 북한 요원과 손을 잡고 핵전쟁을 막습니다. 말이 되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는데, 보는 동안은 계속 긴장했습니다. 강철비는 2017년 양우석 감독이 연출한 액션 스릴러로, 원작 웹툰을 바탕으로 남북 핵 위기 상황을 가상으로 그린 영화입니다. 정우성과 곽도원이 주연을 맡았고, 450만 관객이 들었습니다.
강철비와 남북관계
강철비는 스파이 스릴러(Spy Thriller)입니다. 첩보 활동과 국가 안보를 중심 갈등으로 삼는 장르인데, 강철비는 여기에 남북 분단 상황을 끌어들입니다. 북한 내부 쿠데타, 강경파의 핵 사용 시도, 미국과 중국까지 끌려 들어오는 구도가 스크린에서 펼쳐집니다. 영화가 개봉한 2017년은 북한 핵실험이 연속으로 이어지던 시기였습니다. 국방연구원(KIDA) 자료에 따르면 그해 북한은 두 차례의 ICBM 발사와 6차 핵실험을 단행하며 역대 최고 수위의 도발을 이어갔습니다. (출처: 한국국방연구원) 그 해에 극장에서 봤는데, 스크린 속 위기 상황이 뉴스 화면과 자꾸 겹쳤습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남한 안보실장 곽철우가 결국 데탕트(Détente), 즉 국가 간 긴장 완화를 추구하는 외교적 선택을 택합니다. 그 선택이 현실에서 얼마나 힘든지는 그 이후 몇 년을 보면 압니다.
강철비 핵억지력
강철비 후반부는 핵전쟁 직전 상황까지 치닫습니다. 핵 억지력(Nuclear Deterrence) 은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상대의 선제공격을 막는 전략입니다. 역설적으로 핵이 있어야 전쟁이 안 난다는 논리인데, 강철비는 그 논리가 실제로 얼마나 아슬아슬한지를 직접 보여줍니다. 강경파 한 명이 발사 버튼에 손을 얹는 순간, 수십 년간 유지해 온 균형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 장면에서 손에 땀이 났습니다. 클리프행어(Cliffhanger)는 결말을 완전히 닫지 않고 열어두어 긴장감을 지속하는 서사 기법인데, 강철비 결말이 딱 그렇습니다. 위기는 넘겼지만 엄철우가 다시 남한에 올 수 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그 열린 결말이 속편인 강철비 2로 이어졌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계에 따르면 강철비는 2017년 최종 누적 관객 450만 명으로 남북 소재 영화 중 당시 기준 최고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강철비 버디무비
정우성이 연기한 북한 요원 엄철우와 곽도원이 연기한 남한 안보실장 곽철우, 이름도 한 글자 차이인 두 사람이 이 영화를 끌고 갑니다. 버디 무비(Buddy Movie) 는 성격과 배경이 다른 두 인물이 같은 목표를 위해 함께 움직이는 장르 구조인데, 강철비에서 그 두 사람이 남과 북 출신이라는 점이 이 장르를 흥미롭게 비틉니다. 처음엔 서로 총을 겨누다가, 같은 위기 앞에서 어쩔 수 없이 협력하고, 그 과정에서 상대를 사람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정우성은 체계에 충성하다 배신당한 군인으로, 곽도원은 냉정하지만 실용적인 관료로 각자 자기 캐릭터 안에서 움직입니다. 두 사람이 지하 공간에서 밥을 같이 먹는 장면이 있는데, 대사 한 마디 없이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하고 싶었던 말을 담고 있었습니다. 총을 내려놓고 밥 한 끼를 나누는 순간 적이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 그걸 그 짧은 장면에서 느꼈습니다.
뉴스에서 남북 관련 소식을 볼 때마다 회담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엄철우나 곽철우처럼 떠오릅니다. 강경 발언 뒤에 어떤 계산이 있는지, 협력하는 척하면서 어떤 속내가 있는지. 영화 한 편이 뉴스를 읽는 눈을 조금 바꿔놓은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는 꽤 오래 기억에 남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