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한도전에서 군함도 특집을 봤을 때 처음 이 섬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 꽤 충격이 컸는데, 영화가 나온다고 해서 바로 극장에 갔습니다. 보고 나서 감정이 정리가 잘 안 됐습니다. 역사 때문에 화가 난 건지, 영화 때문에 화가 난 건지 섞였습니다.
2017년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는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김수안 주연으로 659만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순제작비 225억, 실제 하시마섬 3분의 2 크기 세트를 춘천에 직접 지었고, 제작기간이 1419일이었습니다.
배가 도착한 곳
강제징용(强制徵用)이란 일제강점기 일본이 조선인을 강제로 동원해 탄광, 군수공장 등에서 노동을 착취한 행위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일본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배에 오릅니다. 악단장 강옥(황정민)은 딸 소희(김수안)와 함께, 주먹패 칠성(소지섭)은 돈을 벌러, 일제에 시달려온 말년(이정현)은 각자의 이유로 그 배에 올랐습니다.
배가 도착한 곳이 군함도였습니다. 하시마섬(端島)은 나가사키항에서 18킬로미터 떨어진 콘크리트 인공섬으로, 섬 모양이 군함처럼 생겼다고 해서 군함도라 불렸습니다.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 수 없다고 당시 조선인들이 지옥문이라 불렀던 곳입니다. 배에서 내리는 장면에서 인물들 표정이 순서대로 굳어가는 걸 보면서 저도 덩달아 굳었습니다.
해저 1,000미터 막장(坑底)이란 탄광에서 가장 깊은 채굴 현장을 말합니다. 허리를 굽히고 좁은 통로를 기어 다니며 석탄을 캐는 장면들이 공간 자체로 압박감을 줬습니다. 가스 폭발 위험이 상시인 곳에서 사고가 나도 그냥 끌려 나가는 게 전부였습니다. 독립기념관 자료에 따르면 1925년부터 1945년 사이 하시마 탄광에서 숨진 조선인은 122명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당시 탄광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500명에서 600명 수준으로 추산됩니다(출처: 독립기념관).
강옥이 선택하는 것들
황정민이 연기한 강옥은 이 영화에서 가장 보기 불편한 인물이었습니다. 악단장 출신이라 일본인 관리들 비위를 맞추는 법을 알고, 그걸로 딸 소희만이라도 지키려 합니다. 같은 조선인들이 맞고 죽어가는 걸 보면서도 그 상황을 이용합니다. 아이가 옆에 있으면 저도 그랬을 것 같았습니다.
소희를 연기한 김수안은 당시 아역이었는데, 아버지가 일본인들 앞에서 악단을 이끄는 장면에서 말 한마디 없이 그 상황을 다 담았습니다. 그 나이에 그 연기가 나왔다는 게 영화 내내 신기했습니다.
OSS 요원 박무영(송중기)이 독립운동 인사를 구출하러 잠입하는 임무와 강옥의 탈출 계획이 뒤엉키면서 후반부가 전개됩니다. 실제 하시마 탄광에서 조선인들의 집단 무장봉기나 대규모 탈출은 역사적 기록에 없습니다. 개인의 탈출 시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대부분 익사하거나 잡혔습니다. 영화 후반부는 완전한 가상이었고, 이 점에서 관객 반응이 갈렸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계에 따르면 군함도는 2017년 한국 영화 최대 제작비 투입작이었으며 개봉 첫날 스크린 수 2,027개로 당시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개봉 첫날과 그 이후
군함도는 개봉 첫날 97만 명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 오프닝 역대 1위를 찍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관객이 빠르게 줄었고 손익분기점 800만을 넘지 못했습니다. 스크린 독과점 비판과 역사 왜곡 논란이 동시에 터졌습니다.
실제로 하시마섬에 끌려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영화 후반부의 탈출 장면보다 훨씬 덜 극적이고 훨씬 더 비참했습니다. 총을 들고 싸우거나 집단으로 도망치는 대신, 그냥 매일 막장으로 내려가고 사고가 나면 묻혔습니다. 영화가 전반부에서 그 현실을 잘 보여줬는데, 후반부에서 방향이 바뀌면서 앞에서 쌓아 올린 것들이 좀 허물어졌습니다. 그게 극장에서 나오면서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