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디오 부스 하나와 하정우 혼자서 97분 동안 진행되며 배경이 바뀌지 않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러닝타임 내내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화면의 좁은 공간이 오히려 더 답답하고 더 무서웠습니다.
2013년 김병우 감독의 더 테러 라이브는 하정우, 이경영, 전혜진 주연으로 558만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설국열차와 하루 차이로 개봉해서 그 틈에서 558만을 끌어낸 겁니다. 감독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 어려울 만큼 완성도가 있었습니다.
마포대교가 폭발한 날
윤영화(하정우)는 잘나가던 메인 앵커였다가 불미스러운 일로 라디오로 밀려난 인물입니다. 생방송 중 박노규라는 일용직 노동자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신세 한탄을 늘어놓다가 마포대교를 폭파하겠다고 합니다. 윤영화는 귀찮다는 듯 폭파해 보라고 맞받았고, 그 순간 마포대교가 폭발합니다.
밀실(密室) 스릴러란 제한된 공간 안에서 탈출이나 해결을 시도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긴장감을 만드는 장르입니다. 이 영화는 라디오 부스라는 극도로 좁은 공간 하나로 97분을 끌고 갑니다. 공간이 좁을수록 인물이 할 수 있는 게 없고, 할 수 없을수록 관객이 더 초조해집니다. 하정우가 전화기 하나 붙잡고 땀을 흘리는 장면들이 그 공간에서 나왔습니다.
윤영화가 경찰에 신고 대신 독점 생중계를 선택하는 장면에서 잠깐 손에 땀이 났습니다. 그 선택이 얼마나 잘못된 건지 보는 사람은 바로 아는데, 윤영화는 모릅니다. 그 간격이 이 영화에서 제일 불편하고 제일 재밌는 부분이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계에 따르면 더 테러 라이브는 2013년 한국 스릴러 장르 흥행 상위권을 기록했으며, 단일 공간 밀실 영화로는 국내 최고 흥행작으로 꼽힙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박노규의 요구
박노규의 요구는 두 가지였습니다. 2년 전 G20 세계정상회담 준비 중 마포대교 보수공사에서 물에 빠져 죽은 동료 3명에 대한 보상금, 그리고 당시 사태를 방치한 대통령의 공식 사과였습니다.
G20 정상회담(Group of Twenty)이란 세계 주요 20개국 정상이 모이는 국제 경제 협력 회의로, 2010년 한국에서 개최됐습니다. 박노규는 그 행사 준비에 정부가 총력을 기울이는 동안 동료들이 물에 빠졌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요구 금액이 21억 7,924만 5,000원이었습니다. 세 사람 각각의 장례비와 보상금을 따로 계산해서 더한 숫자였습니다. 폭탄을 들고 다리를 터뜨린 사람의 요구가 그렇게 계산된 숫자였다는 게, 이 사람이 얼마나 오래 이 생각을 했는지를 보여줬습니다. 화면에 그 숫자가 나오는 순간 멈칫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건설업 일용직 노동자 인권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일용직 노동자는 고용 불안정과 산업재해 사각지대에 동시에 노출되어 있으며,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보상받지 못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습니다(출처: 국가인권위원회).
대통령은 오지 않았다
더 테러 라이브 결말은 윤영화가 원하던 것도, 박노규가 원하던 것도 하나도 이뤄지지 않는 방식입니다. 대통령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고, 윤영화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에 윤영화가 카메라를 향해 무언가를 말하는 장면이 폭발로 끊기면서 화면이 꺼집니다.
박노규는 얼굴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목소리만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기억에 남는 건 하정우 얼굴보다 그 목소리였습니다. 무섭기보다 지쳐 있는 목소리, 화가 났는데 슬픈 목소리였습니다.
97분짜리 영화인데 보고 나서 꽤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생중계가 끝나는 방식이, 진짜 뉴스를 보다가 방송이 갑자기 끊기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