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예진 영화라는 것만 알고 들어갔다가 이 사람이 실제로 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가 있었는데 교과서에서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습니다. 그게 보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2016년 허진호 감독의 덕혜옹주는 손예진, 박해일 주연으로 560만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권비영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고, 손예진이 직접 제작비 10억을 투자한 것으로도 화제가 됐습니다. 역사 왜곡 논란이 따라붙은 영화인데, 논란과 별개로 이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만한 영화였습니다.
열세 살에 입힌 기모노
옹주(翁主)란 조선시대 왕이 후궁에게서 낳은 딸에게 내린 작위입니다. 덕혜옹주(1912~1989)는 고종황제의 고명딸로 조선의 마지막 황녀였습니다. 고종이 승하한 1919년부터 불행이 시작됐고, 열세 살이던 1925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나라를 잃은 황실의 딸을 볼모로 잡아 일본식 교육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아역 김소현이 기모노를 처음 입는 장면에서 한동안 화면을 보고 있었습니다. 옷을 입히는 사람도, 입는 아이도 말이 없었습니다.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어른이 된 덕혜와 어린 시절 친구 김장한(박해일)이 일본에서 재회하고, 장한이 덕혜를 귀국시키려는 계획을 세우는 게 영화의 중심입니다. 창작된 인물이지만 박해일이 자연스럽게 가져가서 사실처럼 봤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왕공족(王公族)이란 대한제국 황실 인사들을 일본 황족 아래 두어 관리하던 신분으로, 덕혜옹주는 이 제도 아래서 귀국의 자유조차 없었습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해방 뒤에도 못 돌아온 사람
덕혜옹주는 1931년 대마도 백작 소 다케유키와 정략결혼을 합니다. 딸을 낳은 뒤 조현병(調絃病)이 발병했습니다. 조현병이란 망상, 환각, 현실 인식 장애 등을 동반하는 정신 질환인데, 낯선 나라에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수십 년을 살았으니 몸이 버티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말도 흐릿해졌다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광복 이후에도 덕혜는 바로 귀국하지 못했습니다. 영화에서 덕혜가 귀국선 앞에서 막히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진짜 화가 났습니다. 나라가 해방됐는데 일본 정신병원에 수십 년을 더 있어야 했습니다. 귀국이 허락된 건 1962년이었고, 38년 만에 창덕궁 낙선재로 돌아왔습니다.
노년의 덕혜(손예진)가 창덕궁을 걷는 마지막 장면에서 손예진과 박해일의 연기가 분장에만 기대지 않았습니다. 걷는 속도, 손이 떨리는 방식, 말하는 목소리까지 다 달라져 있어서 두 사람이 진짜 노인처럼 보였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계에 따르면 덕혜옹주는 2016년 한국 영화 흥행 상위권을 기록했으며, 대한제국 황실을 소재로 한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작품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교과서 밖의 황녀
덕혜옹주는 1989년 77세로 눈을 감았습니다. 사망 전까지 그녀를 아는 한국인이 많지 않았고 교과서에도 이름이 없었습니다. 나라가 망한 뒤 황실 이야기는 오랫동안 밀려났고, 덕혜옹주도 그 안에서 잊혔습니다.
영화가 개봉한 뒤 묘소에 참배객이 크게 늘었다는 소식이 나왔습니다. 38년을 기다려 돌아온 나라에서 조용히 지내다 죽었고, 그 뒤로도 오래 아무도 찾지 않았습니다. 보고 나서 이 사람 이야기를 더 찾아봤는데, 영화에 나온 것보다 실제가 훨씬 길고 훨씬 쓸쓸한 이야기였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했는데 그 후에 찾아본 역사적 사실마저도 씁쓸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도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까지는 덕혜옹주를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역사 기록에서 잊힌 인물들을 영화로나마 알게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작품이 많이 개봉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