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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라랜드 (뮤지컬, 재즈, 꿈과 사랑의 충돌)

by 영화 매니아 은채 2026. 6. 3.

 

2016년 겨울에 이 영화를 처음 봤는데, 극장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런 영화는 살면서 몇 번 없었습니다. 화면이 너무 예쁘고, 음악이 계속 귀에 맴돌았는데, 집에 돌아오고 나서 뭔가 이상하게 기분이 복잡했습니다. 감동적이었는데 슬펐고, 아름다웠는데 씁쓸했습니다. 그게 라라랜드였습니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라라랜드는 배우를 꿈꾸는 미아(엠마 스톤)와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이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고, 서로의 꿈을 향해 나아가면서 결국 엇갈리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이 영화를 뮤지컬이라는 형식, 재즈라는 소재, 그리고 꿈과 사랑이 충돌하는 지점 세 방향으로 짚어보겠습니다.

 

오프닝 5분

저는 뮤지컬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평범하게 대화하다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늘 어색하게 느껴졌거든요. 근데 라라랜드는 달랐습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고속도로 정체 구간에서 수십 명이 차 위로 올라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릅니다. 뮤지컬(musical)이란 배우들이 대사와 노래, 춤을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전달하는 장르를 말합니다. 라라랜드는 그 첫 장면부터 "이건 현실이 아니라 꿈의 언어로 말하는 영화"라고 선언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고속도로라는 가장 현실적이고 답답한 공간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장면을 펼쳐놓는 그 설정이 저한테는 너무 영리하게 느껴졌습니다.

셔젤 감독은 원테이크(one-take) 기법을 여러 장면에 활용했습니다. 원테이크란 편집 없이 하나의 긴 호흡으로 장면 전체를 찍어내는 촬영 방식을 말합니다. 오프닝 고속도로 장면도 그중 하나인데, 배우 수십 명이 차 위에서 동시에 움직이는 장면을 끊지 않고 찍어낸 것입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어떻게 찍은 거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나중에 메이킹 영상을 찾아보고 나서야 그 규모가 실감 났습니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색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미아가 입는 노란 드레스, 보라색 밤하늘, 파란 조명이 있는 재즈 바, 이 색들이 번갈아 나오는 방식이 마치 옛날 할리우드 뮤지컬 포스터처럼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인터뷰에서 1950~60년대 클래식 뮤지컬인 사랑은 비를 타고, 셰르부르의 우산을 의도적으로 참고했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The Guardian, 데이미언 셔젤 인터뷰, 2017)

 

세바스찬이 재즈에 집착하는 이유

세바스찬은 재즈를 살리고 싶다고 말합니다. 근데 영화 초반에는 솔직히 그냥 고집스러운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크리스마스 파티 행사에서 본인이 치고 싶은 재즈를 멋대로 연주하다가 해고당하고, 식당 알바를 전전하면서도 재즈 바를 차리겠다는 집착을 내려놓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아에게 재즈를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그게 달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세바스찬은 재즈를 두고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싫어한 적이 없는 음악"이라고 합니다. 재즈(jazz)란 19세기말~20세기 초 미국 남부 흑인 음악에서 출발한 장르로, 즉흥 연주(improvisation)가 핵심입니다. 즉흥 연주란 악보 없이 그 순간 느끼는 감정으로 음을 만들어가는 방식을 말합니다. 세바스찬이 재즈에 집착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습니다. 계획대로만 사는 것에 대한 반발, 그 순간에 충실하고 싶다는 욕구가 재즈라는 소재 안에 담겨 있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두 번째 볼 때 비로소 그 연결이 보였습니다. 세바스찬과 미아가 처음 제대로 대화를 나누는 그리피스 천문대 장면에서, 두 사람이 공중으로 떠올라 별 사이를 걷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게 뮤지컬의 문법으로 표현한 첫사랑의 감각인데, 나중에 두 사람이 헤어지고 나서 그 장면이 다시 떠오를 때 전혀 다른 무게로 느껴집니다.

미아 역의 엠마 스톤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오디션마다 떨어지고 자신감을 잃어가는 미아의 표정 연기가 너무 세밀해서, 연기를 보고 있다는 게 잊힐 정도였습니다. (출처: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공식 기록,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꿈과 사랑이 충돌하는 결말

라라랜드의 결말은 호불호가 갈립니다. 두 사람이 각자의 꿈을 이루지만 함께하지 않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게 너무 아쉬웠습니다. 왜 해피엔딩으로 끝내지 않냐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영화가 보여주는 건 꿈과 사랑이 항상 같은 방향을 향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미아가 성공한 배우가 되는 과정에서 세바스찬과의 시간이 쌓여 있고, 세바스찬이 재즈 바를 열 수 있었던 것도 미아와의 관계에서 나온 힘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헤어졌지만 서로가 서로의 꿈에 영향을 줬습니다. 그게 영화가 말하려는 사랑의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국내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개봉 당시 네이버 영화 평점 9.1점, CGV 에그지수 95%를 기록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4개 부문 후보에 올라 감독상, 여우주연상, 촬영상, 음악상, 주제가상, 미술상 6개를 수상하며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았습니다.

다만 일부 관객은 결말이 너무 냉정하다는 의견을 냈고, 재즈에 대한 세바스찬의 백인 구원자적 시각이 문화 전용(cultural appropriation)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문화 전용이란 소수 집단의 문화적 요소를 그 역사나 맥락과 분리해 다수 집단이 소비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흑인 문화에서 출발한 재즈를 백인 남성이 '지켜야 한다'는 식으로 그린 방식에 대한 비판이었는데, 보는 관점에 따라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결말 이후 흘러나오는 엔딩 피아노 연주를 듣는 동안 한참 앉아 있었습니다. 아름다웠지만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행복한 결말이 아닌데 기분 나쁘지 않은, 오히려 뭔가 정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꿈을 좇는 게 맞는 건지 사랑을 지키는 게 맞는 건지, 그 질문이 영화가 끝나도 한참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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