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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 (디아스포라, 순자, 아메리칸드림)

by 영화 매니아 은채 2026. 6. 13.

 

미나리는 조용한 영화입니다. 폭발도 없고, 반전도 없고, 누가 죽거나 살아남는 긴장감도 없습니다. 그런데 보는 내내 뭔가 조여드는 게 있었습니다. 미나리는 2020년 정이삭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1980년대 아칸소 시골로 이주한 한국계 이민 가족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감독 본인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했고, 윤여정이 할머니 순자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으면서 국내외에서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디아스포라, 순자, 그리고 영화 제목이기도 한 미나리라는 식물 세 가지 쪽으로 읽어봤습니다.

 

디아스포라

미나리는 디아스포라(Diaspora) 이야기입니다. 본국을 떠나 타국에 정착한 민족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로, 이 영화는 한국계 이민 가족의 삶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들여다봅니다. 제이콥(스티븐 연)은 농장을 직접 일궈서 한국 채소를 재배하겠다는 꿈을 품고 아칸소 벌판에 이동식 주택을 세웁니다. 아내 모니카는 그 선택이 불안하고, 아이들은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려 버팁니다. 아메리칸드림(American Dream) 은 미국에서 성실하게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리키는데, 제이콥이 쥐고 있는 건 그 믿음이되 내용은 철저히 한국 농업입니다. 닭 감별사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농사를 포기하지 않는 제이콥을 보면서 그게 무모한 건지 대단한 건지 계속 갈팡질팡했습니다. 미국 이민정책연구소(Migration Policy Institute)에 따르면 1980년대 한국인 이민자 수는 연간 3만 명을 웃돌았고, 상당수가 농업과 자영업으로 정착했습니다. (출처: 미국 이민정책연구소) 제이콥이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건 그 숫자 때문입니다.

 

순자

이 영화에서 윤여정이 연기한 미나리 할머니 순자는 처음부터 기대를 뒤집습니다. 화투를 치고, 욕을 하고, 손자한테 "할머니 냄새가 싫다"는 말을 들어도 크게 상처받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손자 데이비드 곁에 가장 오래 붙어 있습니다. 앙상블 연기(Ensemble Acting)는 여러 배우가 어느 한 명에게 치우치지 않고 이야기를 함께 끌어가는 연기 방식입니다. 미나리는 그 균형이 자연스럽게 유지되는데, 그 안에서도 윤여정의 순자는 화면에 나올 때마다 공기가 달라집니다. 아카데미 수상 소감에서 윤여정이 "나는 운이 좋았다"라고 말했는데, 그 담담함이 순자라는 인물과 겹쳤습니다. 자전적 서사(Autobiographical Narrative) 는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 구조입니다. 정이삭 감독이 데이비드라는 인물을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담았다는 걸 알고 나서 순자와 데이비드의 장면들이 달리 읽혔습니다. 감독이 실제로 겪었을 그 감정들이 배우들의 얼굴에 있었습니다.

 

미나리라는 식물

영화 후반부에 순자가 시냇가에 미나리 씨앗을 뿌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미나리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이고, 순자는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란다"라고 말합니다. 이 장면 하나가 이 가족 전체를 압축합니다. 그 장면을 연결 고리로 삼아 영화 전체를 보면 슬로 시네마(Slow Cinema)의 호흡이 더 뚜렷해집니다. 느린 호흡과 긴 숏으로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담는 영화 스타일인데, 미나리는 중요한 대사 없이 이어지는 장면들, 아칸소 벌판의 넓은 하늘, 아이들이 마당에서 노는 모습을 그냥 쌓아 올립니다. 보다 보면 이 가족이 어떤 사람들인지가 설명 없이 쌓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자료에 따르면 미나리는 국내 개봉 후 예술 영화 부문에서 꾸준한 반응을 얻었고, 윤여정 수상 이후 재관람 수요가 뚜렷하게 늘었습니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제이콥은 꿈을 이뤘는지, 아닌지. 영화는 그 답을 딱 잘라 주지 않습니다. 이민 와서 농장 하나 일궈보려다 다 잃은 사람인지, 아니면 가족이랑 버텨낸 사람인지, 이쪽에서 읽으면 이렇고 저쪽에서 읽으면 저렇습니다.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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