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 미리 말해주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영화가 거꾸로 간다고. 주인공이 죽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시간을 역행하며 그 사람이 어떻게 그 자리에 오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구조입니다. 저는 이 구조를 모르고 봤다가 처음 10분에 완전히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날 즈음엔 그 시작 장면이 완전히 다르게 보였습니다.
영화 박하사탕은 2000년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두 번째 장편으로, 한 남자 영호(설경구)의 인생을 죽음에서 출발해 청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1980년부터 1999년까지 약 20년을 다루며, 그 안에는 광주, 군대, IMF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단순한 개인 서사가 아니라 한 세대가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다룬 영화입니다.
역순 구성이 만드는 다른 감각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내용보다 구조였습니다. 영화는 총 7개의 에피소드로 나뉘고, 각 에피소드는 현재에서 과거로 이동합니다. 이런 서사 방식을 역행 구성(reverse chronology)이라고 합니다. 이야기를 시간 순서대로 풀지 않고 결말에서 시작해 원인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입니다. 관객은 영호가 왜 그렇게 됐는지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가 아직 망가지기 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구조가 만드는 감각은 일반적인 비극과 다릅니다. 순방향으로 보면 인물이 점점 나빠지는 과정을 보면서 안타까워하게 됩니다. 그런데 거꾸로 보면 이미 무너진 사람의 순수했던 시절을 보는 것이 됩니다. 제 경험상 그 감각이 훨씬 더 오래 남습니다. 영호가 처음으로 순이를 만났던 장면에서, 저는 이미 그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장면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영화 비평에서는 이런 구조적 장치를 내러티브 프레이밍(narrative framing)이라고 부릅니다. 관객이 정보를 얻는 순서를 조정해 동일한 장면을 전혀 다른 감정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박하사탕은 이 기법을 한국 영화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트라우마가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가
영호가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시간을 거슬러 따라가다 보면, 결정적인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광주입니다. 군인으로 광주에 투입된 영호는 그 경험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영화는 그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지만, 그전과 후의 영호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를 구성 자체로 보여줍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변화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로 설명합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극단적 사건을 경험한 이후 지속적으로 침습적 기억, 감정 마비, 과각성 상태가 나타나는 심리적 반응입니다. 그 사건이 끝난 뒤에도 뇌와 몸이 계속 그 상황 안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국립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집단적 폭력이나 국가 폭력을 경험한 생존자의 경우 PTSD 발생률이 일반 외상 경험자보다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나며, 적절한 개입 없이는 만성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출처: 국립트라우마센터).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영호를 그냥 나쁜 사람으로 읽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보고 나니 영호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시대에 짓눌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시대였다는 게, 이 영화가 단순한 개인 드라마로 읽히지 않는 이유입니다.
시대의 상처, 그리고 설경구의 연기
이 영화는 1980년대 광주, 1990년대 군사 정권 이후, IMF 외환위기라는 세 개의 역사적 맥락을 한 인물의 몸 안에 통과시킵니다. 영호 개인의 붕괴가 곧 그 시대를 살아낸 한 세대의 붕괴와 겹쳐 보이도록 구성된 것입니다. 사회학에서는 이런 서사 방식을 역사적 트라우마(historical trauma)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특정 세대나 집단이 역사적 사건을 통해 공유하는 심리적 상처가 개인의 삶에 어떻게 각인되는지를 분석하는 개념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맥락에서 이 영화는 그 개념을 가장 밀도 있게 구현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설경구 없이는 이 영화가 성립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에피소드마다 나이와 상태가 다른 영호를 연기해야 하는데, 억지로 나이 들어 보이거나 젊어 보이려는 느낌이 없습니다.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 그러니까 시간상으로 가장 이른 청년 영호의 장면에서 그 얼굴이 앞에서 봤던 영호와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달랐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영화가 지금도 회자되는 이유 중 절반은 설경구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보고 나서 유쾌하지 않습니다. 희망적인 결말도 없고, 누군가 잘못을 인정하는 장면도 없습니다. 영호가 왜 그렇게 됐는지 이해는 되는데, 그게 위로가 되지는 않습니다. 보고 나서 꽤 오랫동안 기분이 이상했는데, 그게 싫지는 않았습니다. 이 정도로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가 흔하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