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퀸 노래를 좋아하긴 했는데, 프레디 머큐리가 어떤 사람인지는 거의 몰랐습니다. 그냥 목소리 좋은 가수 정도로만 알았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그게 얼마나 얕은 이해였는지 싶었습니다. 라이브에이드 무대가 끝나는 순간 극장 안이 이상하게 조용해졌는데, 그 침묵이 박수보다 더 강렬했습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라미 말렉)의 삶을 다룬 전기 영화입니다. 1970년대 밴드 결성부터 1985년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라이브에이드 공연까지를 중심축으로 삼고 있습니다. 퀸이라는 이름의 탄생, 프레디의 정체성, 그리고 라이브에이드 세 방향으로 이 영화를 풀어보겠습니다.
퀸이라는 이름
퀸(Queen)은 1970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된 록 밴드입니다.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 드러머 로저 테일러, 베이시스트 존 디콘, 그리고 보컬 프레디 머큐리 네 명으로 구성됐고, 장르 구분을 거부하는 음악 스타일로 1970~80년대를 대표하는 밴드가 됐습니다.
영화가 밴드 결성 초기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좋았습니다. 프레디가 처음 멤버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 보컬 자리를 따내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포장되지 않고 담담하게 흘러갑니다. 그 덕분에 인물들이 처음부터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뭔가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은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는 1975년 발표된 퀸의 대표곡으로, 오페라(opera), 하드록(hard rock), 발라드가 하나의 곡 안에 뒤섞인 형식으로 구성됐습니다. 오페라란 대사 대신 노래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음악 형식을 말합니다. 당시 음반사는 6분짜리 이 곡이 너무 길고 형식도 이상하다며 싱글 발매를 반대했습니다. 그 장면에서 프레디가 "이건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이라고 버티는 모습이 짧지만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곡이 결국 영국 차트 1위에 9주 연속 머물렀으니, 틀린 건 음반사였습니다. (출처: Official Charts Company, UK Singles Chart History)
프레디의 정체성
라미 말렉의 연기가 없었다면 이 영화가 지금처럼 기억될 수 없었을 겁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발음, 걸음걸이, 무대 위에서 마이크 스탠드를 다루는 방식까지 재현한 수준이 놀라웠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다가 몇 번씩 이게 연기인지 실제 공연 영상인지 헷갈렸습니다.
프레디 머큐리는 영화 안에서 자신의 성정체성과 오래 씨름합니다. 성정체성(sexual identity)이란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별에 대해 스스로 인식하고 규정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영화는 프레디가 가족에게 커밍아웃하는 장면, 오랜 연인 메리와의 관계 변화, 새로운 파트너 짐 허튼을 만나는 과정을 따라가며 그 씨름을 보여줍니다. 설명하거나 판단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 사람이 살아온 길을 따라가는 연출이 마음에 박혔습니다.
영화는 프레디의 HIV 감염 사실도 다룹니다.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란 면역 체계를 공격해 에이즈(AIDS)를 유발하는 바이러스를 말합니다. 1980년대는 HIV/AIDS에 대한 의학적 이해가 부족하고 사회적 낙인이 심했던 시기였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1980년대 중반까지 AIDS는 원인조차 규명되지 않은 상태였고,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공포가 극심했습니다. 프레디가 진단을 받은 뒤에도 밴드 활동을 이어가는 선택이 그 맥락 안에서 보이면 훨씬 다른 무게로 읽힙니다. (출처: World Health Organization, HIV/AIDS fact sheet)
라이브에이드
영화의 마지막 20분은 1985년 7월 13일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라이브에이드(Live Aid) 공연 재현입니다. 라이브에이드란 에티오피아 기아 난민 구호를 위해 밥 겔도프가 기획한 자선 공연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열렸으며 전 세계 약 19억 명이 TV로 시청했습니다.
퀸이 그날 무대에서 21분 동안 펼친 공연은 당시 현장에 있던 관객뿐 아니라 TV 시청자들에게도 충격이었다는 평이 많습니다. 저는 유튜브에서 실제 공연 영상을 찾아서 영화 장면과 비교해 봤는데, 카메라 앵글, 프레디의 동선, 관중과 호흡하는 방식이 거의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습니다. 그 디테일을 알고 난 뒤로 마지막 공연 장면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라미 말렉은 이 역할로 2019년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시상식에서 말렉은 "이건 이방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모두 속하고 싶어 합니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는데, 그 말이 프레디 머큐리라는 인물을 가장 간결하게 요약한 것 같았습니다.
영화 자체에 대한 비평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Rotten Tomatoes 기준 비평가 지수 61%로, 사실 관계 오류나 프레디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반면 관객 지수는 94%였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전기 영화(biographical film)로서의 정확성보다 공연 영화로서의 감각을 골랐다고 봤습니다. 전기 영화란 실존 인물의 삶을 재구성해 보여주는 장르를 말하는데, 보헤미안 랩소디는 그중에서도 무대 위의 프레디를 보여주는 데 훨씬 힘을 씁니다. 그게 맞다 틀리다 보다는, 2시간 넘게 지루하지 않게 만든 이유가 거기 있었습니다.
라이브에이드 장면이 끝나고 극장 불이 켜졌을 때, 옆 사람이 박수를 쳤습니다. 저도 모르게 따라 쳤습니다. 스크린 앞에서 박수를 친 건 그게 처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