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이 영화를 개봉 당시 극장에서 봤습니다. 웹툰 원작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한국판 판타지 블록버스터 정도로 기대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중반부터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고, 엔딩 즈음에는 눈물을 참느라 꽤 고생했습니다. 저승이라는 소재를 이렇게 쓸 줄은 몰랐습니다.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은 2017년 개봉한 김용화 감독의 작품으로, 주호민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합니다. 소방관 자홍(차태현)이 사망 후 저승에서 49일 동안 7개의 재판을 받는 과정을 다루며, 세 명의 저승차사가 그를 변호합니다. 개봉 당시 1441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한국 영화 흥행 순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속편까지 합산하면 누적 관객 수가 2800만을 넘습니다.
저승 세계관, 어떻게 설득력을 얻었나
솔직히 저승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자칫 억지스럽거나 가볍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세계관을 꽤 촘촘하게 설계했습니다.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 등 7개의 지옥 재판이 각각 다른 질문을 하나씩 꺼내는 방식이라서, 보다 보면 영화를 보는 건지 나 자신을 보는 건지 헷갈리는 순간이 생깁니다.
한국의 저승 관념은 불교와 유교, 무속 신앙이 혼합된 독특한 문화적 층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십구재(四十九齋)란 사망 후 49일 동안 7일마다 한 번씩 총 7번의 심판을 받는다는 불교 의례에서 유래한 개념입니다. 각 심판에서 죄를 어떻게 지었는지에 따라 다음 생이 결정된다는 구조는 업보(業報), 즉 전생의 행위가 현생 또는 내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불교 윤리 개념과 연결됩니다. 국립민속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저승 관련 민속 신앙은 삼국시대부터 형성되어 현재까지 제례 문화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제가 보면서 흥미로웠던 건 자홍이 재판을 받는 장면들이 죄를 따지는 게 아니라, 그가 살아있는 동안 했던 선택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방식이었다는 점입니다. 살면서 했던 행동 하나하나가 죽은 후에도 따라온다는 설정이, 그냥 판타지로 넘기기가 어려웠습니다.
죄와 벌,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선의
이 영화에서 자홍은 처음부터 착한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소방관으로 일하다 동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고, 저승에서도 진실을 말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재판을 하나씩 통과하면서 그가 몰랐던 진실들이 불쑥불쑥 나옵니다. 좋은 의도가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됐던 순간들, 본인은 기억조차 못 하는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선의의 맹점(benevolence blindspot)이라고 부릅니다. 자신이 선하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타인에게 미친 부정적 영향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개념입니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이라도 결과적으로 상대에게 고통을 줄 수 있으며, 그 간극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윤리적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심리학회 연구에 따르면 자기 정당화(self-justification) 성향이 강할수록 타인에게 미친 해로운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높게 나타납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저는 자홍이 어머니와 관련된 재판 장면에서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자홍이 잘못한 게 아니라 몰랐다는 점 때문에 그 장면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모르고 상처를 준다는 게 얼마나 흔한 일인지를, 영화가 너무 정확하게 짚어냈습니다.
가족애, 이 영화가 결국 하려던 이야기
이 영화를 저승 판타지로 분류하면 절반만 맞습니다. 실제로는 어머니와 두 아들 사이의 이야기입니다. 자홍이 저승에서 재판을 받는 동안, 이승에서는 동생 수홍(김동욱)의 이야기가 나란히 진행됩니다. 두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어머니(예수정)가 두 아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가 천천히 드러납니다.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이란 인간이 특정 대상과 형성하는 정서적 유대가 이후 삶의 전반적인 심리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입니다. 심리학자 존 볼비(John Bowlby)가 제안한 이 이론에 따르면, 초기 양육자와의 관계가 개인의 자존감, 대인 관계 패턴, 정서 조절 능력 형성에 오래 남습니다. 영화 속 두 아들은 어머니를 사랑하는 방식도, 그로 인해 상처받은 방식도 다릅니다. 그런데 결국 같은 뿌리에서 왔다는 걸 두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보여줍니다(출처: 한국아동심리학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어머니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는데, 그냥 하고 싶었습니다. 영화 한 편이 그 마음을 만들어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