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를 처음 본 건 꽤 오래전 일인데, 그때 느꼈던 감정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당시에는 액션 영화겠거니 하고 앉았다가,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2003년 개봉해 1108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 최초로 천만을 넘은 작품입니다. 그 기록보다 영화 안에 담긴 이야기가 더 충격적이었고,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이 스크린 밖으로 나오는 내내 머릿속을 붙들었습니다.
버려진 사람들
영화의 중심에는 사형수와 사회 부적응자들로 구성된 684부 대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북한 김일성 암살이라는 임무를 위해 인천 앞바다 실미도에 모입니다. 훈련 장면들을 보면서 어느 순간부터 이들을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거칠고 통제 불가능해 보이던 인물들이 극한의 훈련을 버텨내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이 마음을 건드리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남북 관계가 변하면서 임무가 취소되고, 이들은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가 됩니다. 국가가 만들었다가 국가가 지우려 한 사람들. 그 감정이 커질수록 뒤에 올 결말의 무게도 함께 쌓였습니다.
국가라는 이름
실미도가 다른 전쟁 영화와 결이 다르게 느껴지는 건 적이 외부에 없기 때문입니다. 684부 대원들을 위협하는 건 북한이 아니라 이들을 만들어낸 바로 그 국가입니다. 임무를 위해 모든 걸 바치라고 했던 쪽에서, 상황이 바뀌자 이들의 존재 자체를 지우려 합니다. 역사 속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소모되고 사라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 구조가 낯설지 않았고, 그래서 더 불편하게 앉아서 봤습니다. 영화는 국가를 노골적인 악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거대한 시스템이 개인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건조하게 보여줄 뿐인데, 그 건조함이 오히려 오래 남았습니다. 684부대 실미도 사건의 공식 기록은 국가기록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684부대의 끝
부대원들이 버스를 탈취하고 서울로 향하는 장면은 처음 봤을 때 숨이 막혔습니다. 분노인지 절망인지, 아니면 그냥 살고 싶다는 몸부림인지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그 장면에 한꺼번에 담겨 있었습니다. 이들이 원한 건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해명을 듣고 싶었던 것, 어쩌면 그게 전부였는지 모릅니다. 설경구가 연기한 강인찬의 마지막 표정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분노도 체념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얼굴이었습니다. 같이 본 사람과 극장을 나와서 한동안 말이 없었는데, 그게 이 영화가 남긴 감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미도는 국가와 개인 사이에서 사람을 수단으로 쓰는 것이 어디까지 허용되는가를 정면으로 건드리는 영화입니다. 1971년의 이야기지만 지금 봐도 낡지 않는 건, 그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일 겁니다. 관련 역사 자료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