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바타가 개봉한 건 2009년인데, 지금도 그 첫 장면을 기억합니다. 3D 안경을 쓰고 앉아서 판도라 정글이 화면을 꽉 채우는 순간, 옆에 앉은 사람이랑 저랑 동시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기술이 따라올 때까지 12년을 기다렸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섬, 야광으로 빛나는 생명체들, 나비족이 뛰어다니는 밀림은 그전까지 극장에서 본 적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아바타는 개봉 직후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당시 역대 흥행 1위 기록을 새로 썼고, 13년 뒤 재개봉해서도 다시 화제가 됐습니다. 이야기보다 경험으로 기억되는 영화가 있는데, 아바타가 딱 그렇습니다.
판도라를 실제처럼 만든 방법
아바타가 다른 SF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세계관의 밀도입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판도라 행성을 설계하면서 언어학자, 생물학자, 식물학자까지 불러들여 나비족 언어인 나'비어(Na'vi language)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외계어처럼 들리게 몇 마디 갖다 붙인 수준이 아니라, 발음 체계와 문법 규칙이 완전히 잡혀 있는 언어입니다. 그러니까 배우들이 대사를 외운 게 아니라 언어를 배운 겁니다. 월드 빌딩(world building)이란 영화 속 세계를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세세하게 쌓아 올리는 작업을 말하는데, 이 정도 수준으로 완성된 경우는 반지의 제왕 이후로 손에 꼽습니다. 나'비어 커뮤니티가 아직도 활동 중이고, 팬들이 만든 사전도 있습니다. 화면 밖까지 뻗어 나온 세계관이 관객을 판도라를 실제 장소처럼 받아들이게 만드는 겁니다.
퍼포먼스 캡처가 바꾼 것
아바타의 기술적 핵심은 퍼포먼스 캡처(performance capture)입니다. 배우의 표정과 몸동작을 센서로 실시간 기록해 디지털 캐릭터에 입히는 방식인데, 기존 모션 캡처와 다른 점은 얼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잡아낸다는 데 있습니다. 배우가 울면 나비족도 같은 근육으로 웁니다. CG 캐릭터는 눈빛이 공허하다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문제가 있는데, 이는 인간을 흉내 내지만 완전하지 않을 때 오히려 더 이질감이 생기는 현상을 말합니다. 아바타의 나비족은 그 경계를 처음으로 넘었다고 평가받습니다. 미국시각효과협회(VES)는 아바타를 "디지털 캐릭터 표현의 기준을 새로 세운 작품"으로 공식 선정했습니다. (미국시각효과협회 VES) 네이티리가 우는 장면에서 저도 같이 울었는데, 보고 나서야 그게 CG였다는 걸 새삼 떠올렸습니다. 그게 이 기술이 대단한 이유입니다.
아바타 흥행
영화진흥위원회(KOFIC) 자료에 따르면 아바타는 한국 개봉 당시 외화 역대 최고 관객 수를 기록했고, 2022년 재개봉 때도 외화 재개봉 흥행 상위권에 올랐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전 세계 누적 수익은 약 29억 달러로, 한동안 역대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속편 아바타: 물의 길이 2022년 나왔을 때 또 극장을 갔는데, 이번엔 수중 장면들이 전편의 정글만큼 강렬했습니다. 이머시브 시네마(immersive cinema)란 관객이 화면 속 세계에 완전히 몰입하게 만드는 영화 경험을 뜻하는데, 아바타 시리즈가 그 기준을 편마다 다시 쓰고 있다는 게 지금도 신기합니다.
아바타를 처음 본 게 스물 몇 살 때였는데, 그 판도라 첫 장면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이야기 자체는 뻔하다는 말, 맞습니다. 식민지 원주민을 돕는 이방인 이야기는 새로운 구조가 아닙니다. 그런데 영화관을 나오면서 든 생각은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 세계 안에 잠깐 다녀온 것 같다는 기분, 그게 15년이 지나도 아바타가 계속 불려 나오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