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위안부, 영어수업, 증언)

by 영화 매니아 은채 2026. 6. 15.

 

위안부 소재 영화라는 말만 들으면 보기 전부터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래서 솔직히 한동안 미뤘습니다. 그런데 앞부분은 웃다가 중반부터 조금씩 조여오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한꺼번에 터지는 구조가, 제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영화였습니다. 무게를 쌓아가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2017년 김현석 감독의 아이 캔 스피크는 나문희, 이제훈 주연으로 320만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아베 전 일본 총리의 생일인 9월 21일에 맞춰 개봉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는데,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영화가 다르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네이버 영화 관람객 평점 9점대, 웬만해선 후한 점수를 안 주기로 유명한 평론가들도 7~8점을 줄 만큼 완성도에서는 이견이 없는 작품입니다.

 

도깨비 할머니와 9급 공무원

이 영화에 처음 빠져든 건 나문희가 연기한 옥분 할머니 때문이었습니다. 명진구청에 민원 8천 건을 넣은 동네 유명인, 별명이 도깨비 할머니입니다. 갓 부임한 원칙주의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와 처음 맞붙는 장면부터 웃음이 났습니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면서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데, 영어 수업을 고리로 만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옥분이 영어를 왜 배우려는지는 한참 동안 안 나옵니다. 영어를 못한다는 게 창피한 건지, 그냥 늦게 시작한 취미인 건지 모르게 보여줍니다. 저는 중반까지 그냥 할머니가 영어에 꽂혔나 보다 하고 봤습니다. 그러다가 옥분의 과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면서 영어 수업 장면들이 완전히 다른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일본군 위안부(日本軍慰安婦)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군에 의해 강제 동원되어 성적 착취를 당한 여성들을 말합니다. 이 영화 속 옥분의 사연은 실존 위안부 생존자들의 증언에 바탕을 두었으며, 특히 2007년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직접 증언한 이용수 할머니가 옥분의 실제 모델입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옥분이 영어를 배운 이유

옥분의 과거가 드러나는 장면에서 잠깐 화면을 멈췄습니다. 할머니가 배에 새겨진 일장기 문신을 보여주는 장면인데, 나문희가 울부짖거나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냥 보여줬습니다. 그 장면이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옥분이 영어에 그렇게 매달렸던 건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통역 없이 자기 입으로 직접 증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민재는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옥분의 위안부 피해자 신고를 돕기 위해 구청에서 서명을 받고 구청장까지 설득합니다. 원칙만 따르던 사람이 규정 밖에서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이제훈이 그 변화를 자연스럽게 가져갔습니다.

2007년 2월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는 미국 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이 문제를 공식 의제로 다룬 자리였습니다. 당시 이용수, 김군자 할머니와 네덜란드인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가 직접 증언했고, 이 청문회를 계기로 미국 하원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출처: 국가인권위원회).

 

마지막 감동적인 증언

마지막 청문회 장면은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몬드 실제 의회 건물에서 촬영됐습니다. 옥분 앞에서 일본 측 의원이 영어로 "당신은 증언할 수 없다"라고 막아서고, 몇몇 의원들이 위안부 여부 자체에 의구심을 표하는 장면에서 보는 내내 속이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옥분이 일어섭니다.

"Yes, I can speak."

증언을 마친 옥분에게 일본 측이 "돈이 그리 필요했냐"고 도발하자, 이번엔 일본어로 맞대응합니다. 극장 안이 조용해졌다가 박수가 터지던 게 기억납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계에 따르면 아이 캔 스피크는 2017년 개봉 한국 영화 중 드라마 장르 흥행 상위권을 기록했으며, 매년 3.1절 특선영화로 편성될 만큼 꾸준히 다시 찾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위안부 영화라고 해서 내내 무겁고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달랐습니다. 옥분이라는 인물 자체가 너무 세서, 영화 내내 피해자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냥 할 말이 있는 사람이 오랫동안 준비해서 끝내 말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나문희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보는 내내 잊었습니다. 그게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부분이었습니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