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는 보기 전에 제목만 보고 로맨스물인 줄 알았습니다. 완벽한 타인이라는 말이 그쪽으로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실제로는 전혀 달랐습니다. 오히려 가장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는지를 다루는 영화였고, 보는 내내 웃다가 어느 순간 조용해졌습니다.
영화 완벽한 타인은 2018년 개봉한 이재규 감독의 작품으로, 오랜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인 저녁 파티에서 스마트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오는 연락을 모두 공개하자는 게임을 하는 내용입니다. 이탈리아 영화 Perfetti Sconosciuti를 원작으로 하며, 한국판은 개봉 당시 530만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방 하나, 저녁 식사 하나, 게임 하나만으로 두 시간을 끌어가는데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비밀이 관계를 지탱하는 방식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는 게임에 참여한 인물들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왜 저런 게임을 제안하고, 왜 거절을 못 하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중반을 넘어가면서 그 답답함이 인물들을 향한 게 아니라 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스마트폰 안에 있는 것들을 지금 당장 누군가에게 다 보여줄 수 있느냐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선택적 자기 노출(selective self-disclosure)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관계 안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공유하지 않으며, 상대와의 친밀도와 맥락에 따라 공개할 정보를 스스로 조절합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영역이 누구에게나 있고, 그게 나쁜 게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입니다. 미국심리학회(APA)에 따르면 적절한 자기 노출은 친밀한 관계 형성에 필수적이지만, 과도한 노출은 오히려 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 게임에 참여한 인물들 중 누가 제일 나쁜지 고르기가 어려웠습니다. 다들 뭔가를 숨기고 있었지만, 동시에 다들 뭔가를 지키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 두 가지가 사실 같은 행동이라는 게, 이 영화가 내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관계 심리로 읽는 일곱 명의 저녁
이 영화의 인물 구성이 영리합니다. 일곱 명이 모두 조금씩 다른 것을 숨기고 있고, 그 성격도 제각각입니다. 외도, 성정체성, 재정 문제, 건강 이상, 사적인 감정. 특정 인물을 쉽게 악인으로 볼 수 없게 만드는 배치입니다.
관계 심리학에서는 친밀한 집단 안에서 이런 게임이 작동하는 방식을 집단 역동(group dynamics)으로 설명합니다. 집단 역동이란 집단 안의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력과, 그로 인해 집단 전체의 분위기와 행동이 변화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영화 속에서 게임이 시작된 이후 인물들이 하나씩 균형을 잃어가는 과정이 바로 집단 역동이 무너지는 장면입니다. 한 사람의 비밀이 드러나면 다른 사람도 방어적이 되고, 그 긴장감이 전체 분위기를 바꿉니다. 한국심리학회에 따르면 친밀 집단 내 신뢰가 무너지는 속도는 형성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며, 한 번 손상된 신뢰는 회복하는 데 불균형적으로 긴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결말 처리 방식이었습니다. 게임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를 보여주는 방식인데, 그게 위로인지 아닌지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장면이 조금 씁쓸했습니다.
스마트폰이 바꾼 관계의 구조
이 영화가 지금 시대에 특히 유효한 이유는 스마트폰이라는 소재 때문입니다. 스마트폰 이전에는 이런 게임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비밀은 머릿속이나 일기장에 있었지 한 기기 안에 집약되지 않았으니까요. 스마트폰은 한 사람의 연락, 검색 기록, 사진, 소비 패턴을 하나로 압축합니다. 디지털 프라이버시(digital privacy), 즉 개인의 디지털 공간과 정보에 대한 자기 통제권은 현대 사회에서 점점 더 중요한 개념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인터넷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의 87% 이상이 메신저 앱을 매일 사용하며, 하루 평균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4시간을 넘습니다. 그 안에 쌓이는 대화, 검색, 소비 흔적이 방대하다는 걸 생각하면, 영화 속 게임이 왜 그렇게 위협적으로 느껴지는지 이해가 됩니다(출처: 한국인터넷진흥원).
이 영화는 스마트폰을 악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도구 안에 쌓인 각자의 삶이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보고 나서 옆에 놓인 스마트폰을 한 번 더 봤습니다. 잠깐이었지만 열어보기가 좀 망설여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