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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들 (따돌림, 아동 심리, 우정)

by 영화 매니아 은채 2026. 5. 29.

 

솔직히 이건 기대 없이 본 영화였습니다. 아동 영화라는 선입견이 있었고, 어른인 제가 보기엔 좀 유치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아이들 이야기인데 왜 이렇게 불편하고, 왜 이렇게 익숙한지 설명이 안 됐습니다.

영화 우리들은 2016년 개봉한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선이가 여름방학 중 전학생 지아와 가까워지고, 개학 이후 그 관계가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따라갑니다. 대사는 많지 않고, 특별한 사건도 없습니다. 그런데 보는 내내 아이들의 눈빛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따돌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따돌림이 얼마나 조용하게 작동하는가였습니다. 누군가 대놓고 괴롭히는 장면이 거의 없습니다. 급식 줄에서 자연스럽게 빠지고, 체육 시간에 아무도 짝을 맺지 않고, 생일 파티 초대에서 혼자 빠집니다. 그게 폭력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그 조용함이 얼마나 깊이 사람을 파고드는지를 선의 표정으로 전달합니다.

또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런 형태의 따돌림을 관계적 공격성(relational aggression)이라고 합니다. 신체적 폭력이나 언어 폭력처럼 눈에 띄지 않지만, 배제·무시·관계 조작을 통해 상대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하면, 때리거나 욕하지 않아도 아무도 같이 놀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히 큰 상처가 된다는 뜻입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학교폭력 피해 중 언어폭력과 집단 따돌림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특히 관계적 공격성은 피해 아동이 스스로 피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더 오래 지속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제 경험상 이런 종류의 배제는 어른이 되어서도 비슷한 형태로 반복됩니다. 회의에서 자연스럽게 빠지거나, 단체 대화방에서 읽씹당하거나. 그래서 이 영화가 아이들 이야기인데도 남 얘기처럼 안 느껴졌습니다.

 

아동 심리로 읽는 선과 지아의 관계

선과 지아의 관계가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방학 동안 둘은 빠르게 가까워집니다. 서로의 집을 오가고, 비밀을 나누고, 이름을 새겨줍니다. 그런데 개학 이후 지아가 선을 외면하기 시작합니다. 선은 이유를 모릅니다. 관객도 처음엔 잘 모릅니다.

아동 심리학에서는 이 시기를 또래 지향성(peer orientation)이 본격적으로 발달하는 단계로 봅니다. 또래 지향성이란, 아이가 부모나 교사보다 또래 집단의 반응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집단에 속하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조정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친구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친구를 배신할 수도 있는 시기라는 뜻입니다. 지아가 선을 외면한 것은 나쁜 아이여서가 아니라, 그 집단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솔직히 지아를 미워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지아도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 했을 뿐이고, 그 선택이 선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 지아 본인도 제대로 몰랐을 겁니다. 영화는 그 복잡함을 어느 쪽도 완전히 나쁘게 그리지 않는 방식으로 담아냅니다. 이런 서사 구조를 영화 비평에서는 도덕적 모호성(moral ambiguity)이라고 합니다. 선과 악을 명확히 나누지 않고, 인물 각각의 입장에서 행동의 이유를 이해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우정의 본질, 그리고 아이들이 어른보다 솔직한 이유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든 생각은, 아이들은 적어도 솔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른들은 싫어도 웃고, 상처받아도 괜찮은 척합니다. 그런데 선은 지아한테 직접 묻습니다. 왜 그러냐고. 그 장면이 불편하면서도 오래 남았습니다.

우정은 심리학적으로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의 핵심 원천입니다. 사회적 지지란, 정서적 안정과 소속감을 제공하는 인간관계망을 뜻합니다. 특히 아동기의 또래 우정은 자아 개념(self-concept), 즉 스스로를 어떤 존재로 인식하느냐를 형성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학교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생활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아동의 80% 이상이 친한 친구가 있다고 답했으며, 반대로 따돌림 경험이 있는 아동은 자존감 지수가 평균 대비 유의미하게 낮게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교육개발원).

영화는 선이 끝내 지아와 화해하지 못한 채 마무리됩니다. 깔끔한 결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그게 이 영화가 정직한 이유입니다. 현실에서 어긋난 관계가 항상 봉합되지는 않으니까요. 선은 그 경험을 통해 뭔가를 잃었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해 뭔가를 알게 된 것 같았습니다.

이 영화는 어른이 보면 더 불편합니다. 아이들의 이야기인데 내 이야기처럼 읽히는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선이었던 사람도, 지아였던 사람도, 아무것도 안 했던 사람도 다 이 영화 앞에서 잠깐 멈추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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