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 영화라고 해서 좀 버텨야 하나 싶었는데, 막상 보니까 중간까지 계속 웃었습니다. 그러다 끝나고 나서 멍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웃겼는데 슬프고, 슬픈데 따뜻한, 이 조합이 제 예상 밖이었습니다.
2005년 박광현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은 정재영, 신하균, 강혜정, 임하룡 주연으로 800만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감독 데뷔작이 800만이었습니다. 개봉 당시 반미 논란이 꽤 시끄러웠는데, 저한테는 그 논란이 이 영화랑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전쟁이 없는 마을
한국전쟁(韓國戰爭)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으로, 3년여간 한반도 전체를 전장으로 만든 동족상잔의 비극입니다. 정전협정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됐지만 공식적인 종전 선언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그런데 동막골은 전쟁이 난 줄을 모릅니다. 태백산맥 깊은 산속에 있는 이 마을 사람들한테 군인도, 총도, 적도 없습니다. 동막골이라는 이름의 뜻이 아이들처럼 막 살아라인데, 그게 마을 사람들 그대로였습니다. 여기에 미군 조종사 스미스가 불시착하고, 인민군 리수화(정재영) 일행이 길을 잃고 들어오고, 국군에서 탈영한 표현철(신하균) 일행까지 합류합니다.
처음 국군과 인민군이 서로 총을 겨눌 때 마을 사람들은 그게 뭔지를 모릅니다. 수류탄이 창고에 굴러 들어가 옥수수가 팝콘처럼 터지는 장면에서 마을 사람들이 좋아서 날뜁니다. 총을 든 군인들이 우르르 달려와 팝콘을 받아먹는 그 장면을 보면서 웃다가 뭔가 코끝이 찡했습니다. 전쟁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총도 그냥 신기한 물건이었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는 남북 합산 100만 명을 훨씬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산가족 문제는 70년이 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멧돼지 고기를 같이 먹는 밤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멧돼지를 잡아서 묻어버리자, 밤중에 국군이 몰래 파내러 갔더니 인민군이 이미 파내서 구워놓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색하게 둘러앉아 뜯기 시작하는데 스미스까지 왔습니다. 아무 말 없이 고기만 먹다가 슬슬 웃음이 나오는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제일 솔직한 순간이었습니다.
반전(反戰)이란 전쟁에 반대하는 사상이나 운동을 뜻합니다. 이 영화는 반전을 구호나 대사로 말하지 않습니다. 배고프면 같이 먹는 사람들을 그냥 보여줍니다. 저는 그 장면이 길게 이어지는 동안 말 한마디 없이도 다 됐다 싶었습니다.
강혜정이 연기한 여일은 군인들이 처음 총을 꺼냈을 때 겁먹기는커녕 신기해하며 만져보려 합니다. 뭐든 처음 보는 것 앞에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인데, 그 순수함이 이 영화 분위기 전체를 잡아줬습니다. 여일이 마을 안을 뛰어다니는 장면들이 나올 때마다 화면이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작전
후반부에 국군 공수부대가 마을로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바뀝니다. 동막골이 공습 목표가 됐다는 걸 안 다섯 군인들은 폭격 유도 장치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 국군, 인민군, 미군이 함께 나섭니다. 한국전쟁에서 교전 중인 양측이 같은 편으로 움직이는 장면인데,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밭을 갈고 같이 잠을 잔 사람들이니까요.
그 작전에서 다섯 군인이 모두 죽습니다. 그 전날 여일도 눈먼 탄환에 맞았습니다. 마지막에 여일이 죽은 군인들 사이를 뛰어다니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내 웃기던 영화가 그 장면에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극장에서 옆에 앉은 사람이 조용히 우는 소리가 들렸고, 저도 참았는데 참아지지 않았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계에 따르면 웰컴 투 동막골은 2005년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으며, 전쟁을 소재로 한 한국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작품 중 하나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지금도 가끔 다시 봅니다. 볼 때마다 팝콘 장면에서 웃고 마지막에 멍해지는데, 몇 번을 봐도 그게 안 바뀝니다. 전쟁 영화인데 보고 나면 사람 냄새가 나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