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개봉한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극장에서 눈물을 참느라 꽤 힘들었습니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라는 걸 알고 들어갔는데도, 막상 스크린 앞에 앉으니 그 무게가 예상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습니다. 1980년 5월 광주, 그 시간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가까이 다가올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1220만 관객을 동원하며 그 해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택시운전사를 광주라는 공간, 평범한 용기, 역사 앞의 개인이라는 세 방향으로 풀어보겠습니다.
광주라는 공간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80년 5월 광주는 제가 교과서에서 짧은 문장으로 배웠던 그 광주와 전혀 다른 온도로 다가왔습니다. 교과서 속 5.18 민주화운동은 날짜와 사건 개요로 정리된 텍스트였지만, 영화 속 광주는 사람들이 실제로 살고 울고 쓰러지는 공간이었습니다. 주인공 만 섭이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가는 장면, 검문소를 지나 도시 안으로 들어서는 장면에서 저는 이상하게도 숨을 참고 있었습니다. 뭔가 나쁜 일이 곧 일어날 것 같은 그 긴장감이 극장 안 공기를 바꿔놓는 것 같았습니다. 광주는 이 영화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 이미 어떤 선택을 강요받는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외부와 차단된 도시, 진실이 통제되는 상황 속에서 그 안에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태도가 됩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공식 기록은 5.18 기념재단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용기
만섭은 처음부터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게 이 영화를 더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그는 밀린 월세를 내야 하는 평범한 택시기사였고, 독일 기자 피터가 광주 취재에 10만 원을 준다는 말에 별생각 없이 따라나선 사람입니다. 정치에도 관심 없고, 데모하는 학생들을 오히려 못마땅하게 여기던 인물입니다. 저는 이 설정이 처음에는 좀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도 그 상황에서 만 섭처럼 행동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무관심이라는 게 얼마나 자연스러운 선택인지를 만 섭을 통해 직면하게 됩니다. 그런데 광주 안에서 직접 눈으로 보게 되면서 만 섭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도망치려다 돌아오는 그 장면, 저는 그게 가장 인간적인 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단한 신념이 아니라, 두고 온 사람들이 마음에 걸려서 돌아오는 것. 그 평범한 이유가 오히려 더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역사 앞의 개인
택시운전사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가 광주에서 찍은 영상이 외신을 통해 전 세계로 퍼지면서, 광주의 진실이 국제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영화를 통해 처음 제대로 알게 되었을 때, 한 사람의 기록이 역사를 바꾸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실감했습니다. 힌츠페터는 2016년 세상을 떠났고, 생전에 한국을 다시 찾아 만섭을 찾으려 했지만 끝내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실제 모델이 된 택시기사의 신원은 지금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힌츠페터의 실제 인터뷰 영상이 짧게 나오는 장면에서 저는 그 사실이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역사 앞에 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때로는 아주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작은 행동이 쌓여 기록이 되고 기억이 된다는 것. 영화가 끝난 뒤 자리에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던 이유였습니다.
택시운전사는 역사를 고발하는 영화이기 이전에,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순간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담은 영화입니다. 만섭이라는 인물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가 너무 보통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선택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국내 영화 정보는 KOBIS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서, 힌츠페터 관련 기록은 5.18기념재단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광주라는 역사를 잘 모르는 분께도, 이미 알고 있는 분께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남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