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널이 무너지는 데는 30초도 안 걸렸습니다. 차 안에 혼자 있던 이정수(하정우)는 눈 깜짝할 사이에 완전히 고립됩니다. 물 두 병, 케이크 한 조각, 휴대폰 배터리 조금. 이게 전부입니다. 터널은 2016년 김성훈 감독이 연출한 재난 스릴러로, 부실시공으로 붕괴한 터널 안에 갇힌 남자와 그를 둘러싼 바깥세상을 동시에 비추는 영화입니다. 712만 관객이 들었고, 개봉 당시 한국 사회의 안전 불감증 문제와 맞물리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오늘은 고립, 부실공사, 하정우 세 가지로 이 영화를 얘기해 보겠습니다.
터널과 고립
우리가 매일 지나다니는 터널이 배경입니다. 밀실 공포(Claustrophobia)는 좁고 폐쇄된 공간에서 극도의 불안을 느끼는 심리 반응인데, 터널은 그 감각을 영화 내내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합니다. 어두운 공간,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조금씩 줄어드는 음식과 배터리. 보는 내내 숨이 약간 답답했습니다. 마음을 더 잡아당긴 건 이정수가 처한 상황 자체보다, 그 안에서 그가 어떻게 이성을 붙잡는가였습니다. 패닉 상태로 무너지지 않으려고 혼자 말을 거는 장면들, 아내와 통화하면서 목소리 톤을 억지로 유지하는 모습이 액션보다 더 긴장됐습니다. 터널 안 화면이 바깥 장면보다 좁게 느껴지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그 압박감이 스크린을 통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터널 붕괴와 부실공사
이정수가 갇힌 터널은 사회적 재난(Social Disaster)의 산물입니다. 자연적 원인이 아닌 인간의 부주의, 부실, 비리가 만들어낸 참사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이 영화에서 터널은 준공 검사를 통과하고 사람들이 매일 밟고 다니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무너진 겁니다. 구조 책임자가 기자들 앞에서 "이 공사는 정상적으로 진행됐다"라고 발표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에서 제가 느낀 건 분노보다 기시감이었습니다. 책임 소재가 흐려지고, 피해자보다 공사 일정이 먼저 거론되는 흐름이 화면 밖 현실과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국내 터널 내 사고 발생 건수는 2015년 이후 연평균 200건을 넘으며, 구조 시간이 지연된 경우 사망률이 즉시 구조 대비 3배 이상 높습니다. (출처: 소방청)
구조 과정의 문제들도 계속 쌓입니다. 장비 부족으로 구조 골든타임(Golden Hour), 즉 사고 후 생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초기 시간대를 그냥 흘려보내고, 그 와중에 취재 카메라들이 현장을 가득 채웁니다. 구조팀이 장비를 옮기려 해도 기자들이 막아서는 장면은 씁쓸하다 못해 웃기기까지 합니다. 추가 붕괴 위험이 확인됐음에도 공사 재개 압박이 들어오고, 행정 논리는 생존자 한 명보다 도로 전체 개통을 먼저 따집니다. 영화가 픽션이지만 이 흐름을 보면서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혼자 버티는 두 시간
공간은 좁고, 대화 상대도 없고, 물리적 액션도 제한적입니다. 배우 한 명이 두 시간짜리 영화를 혼자 끌어야 하는 구조입니다. 능동적 생존자(Active Survivor) 형 캐릭터란 구조를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상황을 분석하고 움직이는 인물 유형인데, 이정수가 바로 그렇습니다. 남은 물을 계산하고, 붕괴 방향을 파악하고, 외부와의 통화를 끊기지 않으려 애씁니다. 하정우는 공황과 이성 사이를 오가는 장면마다 감정 온도를 아주 세밀하게 조절합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대사가 거의 없는 장면에서도 그 얼굴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는 점이었습니다. 화려한 장면 없이 표정과 호흡만으로 두 시간을 채운 연기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계 기준으로 터널은 2016년 최종 누적 관객 712만 명으로 그해 한국 영화 흥행 3위였습니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가 끝나고 주차장으로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터널 생각이 났습니다. 그날 이후 터널을 지날 때 잠깐씩 천장을 올려다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이정수가 겪은 게 픽션인 건 알지만, 그 터널이 부실공사였다는 설정은 픽션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일상에서 아무 의심 없이 지나치는 것들이 갑자기 무너질 수 있다는 감각, 터널은 그걸 아주 좁은 공간 안에서 보여줍니다.